“스티커에 있는 선을 따라 똑바로 붙여야 해요”
쿠키를 포장하는 취재진의 모습을 ‘매의 눈’으로 살피던 발달장애인 사원 이민령(24)씨가 주의를 줬다. 벌써 세 번째 지적이다.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 쿠키 포장 작업을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단 한 번의 실수 없이 착착 해냈다.
지난달 8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4명이 ‘브라보비버대구’를 방문했다. 지난해 5월 설립된 브라보비버대구는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수제 쿠키와 드립백 커피를 생산하는 회사다. 55명의 발달장애인 직원과 8명의 매니저가 이곳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강동욱 브라보비버대구 대표는 “장애인 고용 문제는 지방에서 무척 심각하다”면서 “대구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장애인을 채용한 게 이례적이라 의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지분투자형 표준사업장 ‘브라보비버대구’를 찾은 김동주, 성가현, 이혜림, 조영은 청년기자가 발달장애인 사원 이민령씨의 안내에 따라 쿠키를 포장하고 있다. /대구=조영은 청년기자
지분투자형 표준사업장, 기업과 사회 모두 ‘윈윈’
브라보비버대구는 전국 최초의 ‘지분투자형 표준사업장’이다.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기업 ‘베어베터’가 고안한 모델로,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 어려운 기업들로부터 지분 투자를 받아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설립, 운영하는 방식이다. 기업들은 투자한 지분만큼 장애인 고용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강동욱 대표는 “지분투자형 표준사업장은 ‘기업’과 ‘사회’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했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한 기업은 정부에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지분투자형 사업장에 참여할 경우 의무고용률도 채울 수 있고, 제품도 납품받을 수 있어 기업으로서는 이득이다. 또 사회적으로는 장애인 고용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으니 기업과 사회 모두 윈윈하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브라보비버대구는 투자 기업들에 쿠키와 커피 드립백을 납품하고 있다. 납품 받은 제품을 직원 복지용으로 나눠주는 기업도 있고,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의 성공에 힘입어 인천과 경기 의정부에도 지분투자형 표준사업장 2호와 3호가 생겨나는 등 전국적으로 모델이 확산하고 있다.
브라보비버대구 커피실 풍경. 커피 드립백 생산이 한창이다. /대구=성가현 청년기자(청세담14기)
설립 1년 만에 안정화… 비결은 지속적인 ‘소통’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오전 조, 오후 조로 나뉘어 하루 4시간씩 근무한다. 중증장애인 근로에 최적화된 시간이다. 본격적인 업무에 투입되기 전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지원을 받아 4주간의 직무교육을 받게 된다. 이후 개인의 작업 능력과 속도, 성향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해 업무에 배치된다.
이날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회의실에는 뜯지 않은 택배상자가 가득 쌓여있었다. 권윤회 매니저는 “설립 1주년을 기념해 사원들의 명함과 회사 캐릭터가 들어간 티를 단체 제작했다”며 웃었다.
브라보비버대구가 1년 만에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던 비결은 비장애인 매니저들과 발달장애 사원들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대화를 나눈 덕분이다. 사원들은 근무 중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지 매니저에게 면담을 요청할 수 있다. 매니저들은 사원들이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방법을 마련한다.
“매니저님이 어려운 점이 없는지 항상 물어보세요. 저는 힘든 일 없어 잘 다니고 있어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요. 돈을 모아 저축도 하고, 부모님께 선물도 해드려요. 오늘은 어버이날이라 카네이션을 사 갈 거예요.” (이민령 사원)
“장애는 ‘다양성’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브라보비버대구 직원 대다수가 1년 동안 근무를 이어가고 있어요.” (권윤회 매니저)
브라보비버대구 원두커피 드립백 완성품. /대구=김동주 청년기자(청세담14기)
발달장애 사원 위한 ‘체육 프로그램’도 준비 중
브라보비버대구는 사원들의 정서적 건강뿐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에도 신경 쓰고 있다. 사내 곳곳에 놓인 혈압측정기와 인바디를 통해 사원들은 언제든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비버운동장’ 준비에 한창이다. 사내에 각종 체육 기구를 설치하고, 전문 코치를 뽑아 발달장애인 사원들을 위한 ‘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강동욱 대표는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여가의 즐거움과 건강까지도 함께 얻을 수 있는 좋은 일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회사의 마스코트인 ‘비버’ 캐릭터는 각자 다른 모습으로 생태계를 함께 꾸려나가는 발달장애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원들을 보면 정말 비버 같아요. 4시간 동안 주어진 일을 해내고, 동료를 사귀고, 같이 어울려 회식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죠. 이런 놀라운 변화가 다른 지역으로도 널리 퍼져나가길 바랍니다.”
대구=조영은 청년기자(청세담14기)